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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ue Of Effort

현실 검증과 상호주관적 실재의 상관 관계.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치와 그 판단의 기준

Reality Check

Intrinsic Loneliness — 이 글에서 깊게 다룬 내용으로, 사람은 개인이 인지한 현상(Epistemic Privacy)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그 현상이 사실인지를 먼저 확인한다. 현상에 대한 사실 여부의 판단 기준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행동의 근거가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흔들릴 때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비견되는 존재론적 공포(Ontological Terror)를 겪는다.

현실 검증은 결국 인간의 생존 본능과 직결된 작업이며 우리는 이 현실 검증 없이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Intersubjective Reality

하지만 현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인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모든 현상에 대해 현실 검증을 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방대하며, 사람의 뇌는 언제나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Heuristic) 방향으로 진화해왔고, 이 현실 검증 작업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상호주관적 실재(Intersubjective Reality)는 현실 검증(Reality Check)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현실이라고 합의한 무형의 약속이다. 즉, 한정된 인지 자원 배분을 목적으로 형성된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현실 검증의 비용을 intersubjective reality 에 위임함으로써 본인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는, 사람이 무엇을 가치 있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Value Methodologies

사람에게 있어서 가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경험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가치를 판단하는 대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esthetic Preference

하나는 아름다움, 경외심 따위의 개인의 주관적 가치 판단을 형성하는 심미학적 선호도이다. 이는 Epistemic Privacy 로 나타나는 주관적 경험이다. 이 경험은 한 개인이 겪어온 모든 epistemic privacy 가 축적되며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을 진 광경을 보며 느끼는 아름다움이나 쓸쓸함, 따스함 같은 감정들이나, 겪어본 적 없는 풍경을 마주하며 장엄함과 경외감을 느끼는 그 경험들은, 개인이 살아온 삶과 본능적 반응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나는 철저히 주관적인 경험이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이유가 필요한가? 우리는 이 경험에 대해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Gift Substrate

다른 하나는, 인간이 어떤 현상 이면의 의도적 주체(Agent) 를 감각할 수 있다는 특성에서 유래하는, 증여적 기질로써의 가치 판단이다. 우리는 단순히 결과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의도'를 읽어내려 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의도를 담아낸 행위 자체가 한정된 인지 자원을 소모한 결과물이다.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며, 특정 행위에 자원을 투여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생애적 기회비용을 지불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처럼 행위에 매몰되어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자원을 노력(Effort) 또는 정성이라고 부른다.

무언가를 주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이다. — Essai sur le don (1923), Marcel Mauss

마르셀은 그의 저서 증여론 (The Gift) 에서 이를 "Hau(영혼)" 이라고 정의한다. 선물에는 증여자의 영혼 일부가 담겨 있기에, 그것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선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증여적 기질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인정하는가' 의 문제다.

그러나 이것들은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일 뿐, 가치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들은 사실 가치를 담아낸 결과물(artifact) 에 가깝다. 그렇다면 가치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The Value

여기서 가치 판단은 다시 개인의 몫으로 회귀한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가 들인 노력과 정성을 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노력의 총량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가치 있는 행위인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의도적 주체가 쏟은 자원들이 그 결과물을 지각하는 개인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노력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의미 있는 행위가 곧 가치라는 셈이다. 여기서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의미 있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손으로 쓴 편지에 대해, 같은 내용을 이메일로 타이핑한 것보다 정성이 더 들어간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런데, 노력이 들어간 것을 안다고 해서 그 손 편지가 의미 있어지는가? 편지를 쓴 주체와 관련 없는 제 3 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열심히 쓴 손 편지(artifact)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 편지를 받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사소한 눈짓과 몸짓만으로 타인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면, 생면부지의 외부인이 그 관계에 참여하게 됐다고 해서, 그 눈짓과 몸짓을 읽어낼 수 있는가?

결국 가치로서의 의미란 개인에게 축적된 경험의 밀도로 결정되며 그 판단 또한 온전히 개인의 경험에 의존한다.

이는 다시 말해, 의도를 전달하고자 한 주체와 결과물을 인지한 주체 사이에 상호주관적 실재가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가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The Establishment

앞서 언급했듯, 상호주관적 실재(Intersubjective Reality)는 구성원들 사이의 약속이다. 하지만 이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약속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선언적으로 정의되는 사실도 아니다. 인지의 주체가 실재감을 느낀 그 순간 상호주관적 실재가 형성되며, 가치가 발생한다. 이 찰나의 폭발적인 생성을 철학에서는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Alain Badiou

La vérité est le processus réel d'une fidélité à l'événement. (진리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의 실제적인 과정이다) — L'Être et l'Événement(1988), Alain Badiou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그의 저서 "존재와 사건(L'Être et l'Événement)"에서 세상을 '구조화된 상황'과 그 구조를 깨고 나오는 '사건'으로 구분한다. 그에게 존재란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하나로-셈해진(count-as-one)' 상태이다.

여기서 사건(Événement)은 견고한 사회적 약속의 틈새를 뚫고 돌출하는 무언가다. 그것은 기존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예측할 수도 없다. 타인의 진심이나 압도적인 예술적 성취, 과학적 발견 등이 나의 인지 체계에 박혀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정보(Data)가 아니라 나의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된다.

바디우는 이 "사건"에 대한 예시로 말라르메의 시, 갈릴레오의 물리법칙, 프랑스 혁명, 운명적 상대와의 만남 등을 든다. 그러한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인지를 뒤흔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충분한 강도의 실재감을 생성하여, 다수의 인지 주체가 함께 뿌리내리고 있던 상호주관적 실재 자체를 재편하는 결과물이다.

Anchoring Capacity

바디우가 든 예시들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실재감을 생성하는 능력에 있어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즉, 사건이라는 것은 별개의 범주가 아니라, 모든 결과물(artifact)이 갖는 현실 고정 능력(anchoring-capacity)이 충분히 높아 인류 보편적으로 적용된 경우이다. 결과물의 가치는 결국 그것이 얼마나 강하게 실재감을 형성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인지 주체들 사이에서도 이 실재감을 느끼는 정도는 주관적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인에게 고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결과물도, 그 능력을 발휘하는 대상 한정으로는 가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손 편지, 사소한 눈짓, 몸짓이 바디우의 "사건"과 범위적 관점에서의 차이를 갖는다. 그러니까, 단 한 명에게만 실재감을 제공하는 결과물도 그 한 명에게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Cognitive Presence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이 결과물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은 작은 범위에 닿고 사라지지만, 그 모든 것이 같은 일이다. 우리가 가치라고 불러온 모든 것 — 위대한 작품도, 새로운 과학적 발견도, 누군가에게 건넨 말 한마디도 — 사실은 이 활동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인지적 실재감(Cognitive Presence)을 가치로 매겨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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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May 0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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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sisEpistemic PrivacyEpistemologyGiftIntersubjective Reality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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