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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eption Overlap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는가, 이해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인식의 중첩으로 나아가는 방법

Epistemic Privacy

There are certain features of the bodily sensations especially, but also of certain perceptual experiences, which no amount of purely physical information includes. — Frank Jackson, "Epiphenomenal Qualia"

Ludwig Wittgenstein 과 Frank Jackson 을 거쳐 현대 철학까지 이어지고 있는 Epistemic Privacy 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물리적 설명과 현상적 경험 사이에 결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주장으로, 개인이 겪는 고유한 경험은 언어라는 틀에 온전히 담기지 않으며, 오직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란 곧 세상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인식(Perception)의 결과물'이며, 이 인식은 철저히 개인의 내부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의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물리적 설명인 언어로 소통한다. 우리는 물리적 신호를 주고 받을 뿐이며, 개개인의 인식(경험)은 애초부터 소통의 범주 바깥에 놓여 있다. 슬픈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눌 때, 상대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나라는 개인의 인식(경험)을 토대로 상대가 느꼈을 qualia 를 유추하는 것일 뿐, 상대가 느낀 qualia 를 직접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식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런데 앞선 글에서는 조직에서의 개인 역량을 인식을 공유하거나 해결하는 masking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공유할 수 없는 것을 공유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Perception Overlap

우리는 물리적 설명과 현상적 경험 사이의 간극을 유추(Inference) 로 넘나든다. 이 간극을 넘어 타인을 이해했다는 것은 곧 그 유추가 타인이 인식한 qualia와 부분적으로나마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는 결코 같은 인식을 완벽히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타인과 완전하게 동일한 인식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그 인식(Perception)이 중첩(Overlap)될 수는 있다. 유추의 결과가 타인의 것과 부분적이지만 충분히 비슷한 맥락을 지니게 된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식의 공유란, 서로 다른 두 인식이 겹쳐져 비슷한 행동과 판단이 가능한 수준으로 경험을 포개어 나감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는 있지만, 그 이해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말은 중요한 대전제 중 하나가 결여된, 허울 뿐인 기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막연하게 이해했다고 착각했던 것들은 모두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추측이었다. 결국 소통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경험을 유추하며 인식을 겹쳐나가는 과정이며, 영원히 완결될 수 없다. 인식 중첩의 완결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목표였던 것이다.

The Communication

그럼 우리는 왜 소통해야 할까?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소통으로 얻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Jamie Zawinski 는 Epistemic Privacy 의 간극 앞에서 물러섰고, Steve Jobs 는 이 간극에 맞서 통제하려 했다. 이들은 인식을 겹쳐내어 그 간극을 극복해보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소통에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인식의 중첩이 완결될 수 없다고 해서, 그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Epistemic Privacy 를 인정하는 순간, 소통은 상호이해를 목적으로 행하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의 인식이 중첩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기 위한 인지적 행동(Cognitive Behavior) 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시도 자체가, 개인의 인식으로는 결코 완전히 포섭할 수 없는 타인의 경험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인지적 소외(Cognitive Alienation) 를 구조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소통은 더이상 단순한 의사 전달 수단이 아니게 된다.

Cognitive Alignment

Epistemic Privacy 가 해소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소통의 목표 역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소통의 목적은 더 이상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대신 우리가 소통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완전히 동일한 인식을 공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판단과 행동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겹쳐진 추정을 형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상태를 우리는 인지적 정렬(Cognitive Alignment) 이라 부를 수 있다.

인지적 정렬은 합의가 아니다. 동의도 아니고, 이해의 완결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인식이 동일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조율된 상태에 가깝다. 이때 소통은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인식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조정하고 확인하는 과정적 행위가 된다.

Epistemic Privacy 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지적 소외 역시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식을 겹쳐내려는 시도를 통해 혼자가 아닌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DateJanuary 15, 2026
Tags
AnalysisCognitive AlienationCognitive AlignmentCommunicationCompetenceEpistemic PrivacyOverlapPerceptionQu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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